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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7 (충주여행) 중원고구려비와 장미산등반
여행2011. 8. 17. 23:43

충주 중앙탑에 오면 근처에 국보205호인 '중원고구려비'가 있다.
인근에 살면서 매번 지나쳐만 보았는데 이번 장미산등반의 입구가 고구려비 옆길이라 아이들과 함께 자세히 비석 감상을 하였다.
우리가 알고있던 내용처럼 비문은 심하게 훼손되고 비석의 하단역시 잘려진 상태이지만,
오히려 그때문인지 고구려의 용맹함이 온몸에 전해오는듯 그 감동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중원고구려비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그 기념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 장미산에서 바라본 충주 -


 

중원고구려비옆에 장미산을 알리는 등산로안내표지판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대략 1시간정도의 코스인데,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깝다.
밤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무덤..
이것이 이산을 이루고있는 대부분인듯하다.
산세의 기운이 무척 세다는 소식이 있는데 그때문인지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하듯 무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농가를 지나 정비가 잘 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 정상 근처 조그마한 산사를 만나게 된다.
산사 뒤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면 드문드문 풀숲들 사이로 산성벽이 보이며 그 성벽을 따라 오르면 드디어 사방 막힘이 없는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장미산 정상에는 장미산성이 있는데 고구려시기 만들어진 산성이라고한다.
장미산이 알려진 이유는 산의 매력보다는 정상의 장미산성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산의 등산코스도 재미없고 높이도 낮은편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과연 이곳이 산성의 최적지임을 알 수 있게한다.
정상에 오르면 장미산성과 더불어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전망대라고 해봤자 벤치하나 박아놓았을뿐..ㅋ
그래도 낮은산에 비해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매우 훌륭하다.
정상에서 충주방향을 바라보면 남한강줄기에 멀리 주흘산줄기가 보이는데 그나마 산에 오른 이유를 갖게 만든다.
내려오는 코스는 다른방향으로 하산을 하였는데, 직하강코스라 거의 미끄러지고 구르며 내려오니 20여분만에 하산완료했다.
빠르게 내려오긴 했지만, 처음 입산위치와의 거리가 녹녹치 않고 해는 저물어가서 어쩔수없이 비좁은 국도를 따라 아슬아슬한 행군으로 약 4km를 국토순방하며 출발지인 고구려비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가족사진 보기 http://tjrghdbs.tistory.com/51

Posted by 행키스